『당악문헌(棠岳文獻)』 해제에 기록된 주요 사건과 인물의 행적을 일자 및 연도순으로 정리해 드립니다.
15세기 ~ 16세기 초반
1476년 (성종 7): 어초은 윤효정(尹孝貞) 출생.
1495년 (연산군 1): 귤정 윤구(尹衢) 출생 (윤효정의 첫째 아들).
1505년 (연산군 11): 해빈 윤항(尹沆) 출생 (윤효정의 둘째 아들).
1508년 (중종 3): 졸재 윤행(尹行) 출생 (윤효정의 셋째 아들).
1512년 (중종 7): 행당 윤복(尹復) 출생 (윤효정의 넷째 아들).
1513년 (중종 8): 귤정 윤구가 생원시에 합격함.
1516년 (중종 11): 윤구가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가독서를 함.
1519년 (중종 14): 기묘사화로 윤구가 삭직되었으며, 영암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남.
1524년 (중종 19): 낙천 윤의중(尹毅中) 출생 (윤구의 둘째 아들이자 윤선도의 조부).
1531년 (중종 26): 윤행이 문과에 합격함.
1534년 (중종 29): 윤복이 생원이 됨.
1538년 (중종 33): 윤구가 복직되었으며, 윤복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함.
1540년 (중종 35): 윤홍중(尹弘中)이 생원시에 합격함.
1543년 (중종 38): 윤효정 사망. 윤의중이 진사가 됨.
1546년 (명종 1): 윤홍중이 별시문과에 급제함.
1547년 (명종 2): 윤복이 부안현감을 지냄.
1548년 (명종 3): 윤의중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함.
1549년 (명종 4): 윤구 사망.
16세기 중반 ~ 후반
1551년 (명종 6): 윤유심(尹唯深) 출생 (윤의중의 큰아들이자 윤선도의 생부).
1552년 (명종 7): 윤복이 낙안군수가 됨.
1554년 (명종 9): 창주 윤유기(尹唯幾) 출생 (윤의중의 아들이자 윤선도의 양부).
1559년 (명종 14): 귤옥 윤광계(尹光啓) 출생.
1565년 (명종 20): 윤복이 안동대도호부사로 부임하여 이황과 교유함.
1572년 (선조 5): 윤홍중 사망.
1573년 (선조 6): 윤복이 충청도관찰사를 지냄.
1576년 (선조 9): 윤유심과 윤유기가 나란히 생원시에 합격함.
1577년 (선조 10): 윤복 사망.
1580년 (선조 13): 윤유기가 별시 병과에 급제함.
1581년 (선조 14): 윤의중이 형조판서에 오름.
1585년 (선조 18): 윤광계가 생원이 됨.
1587년 (선조 20): 고산 윤선도(尹善道) 출생.
1589년 (선조 22): 윤의중이 정여립의 옥사(기축옥사)에 연좌되어 삭출됨. 윤광계가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함.
1590년 (선조 23): 윤의중 사망.
1591년 (선조 24): 윤항 사망.
1592년 (선조 25): 윤행 사망.
1594년 (선조 27): 11월 13일, 윤유기가 행병조정랑을 제수받음.
17세기 (고산 윤선도 시기 중심)
1601년 (선조 34): 윤광계가 주서 세자시강원설서를 지냄.
1603년 (선조 36): 윤광계가 호조정랑으로서 역대실록 재간에 참여함.
1606년 (선조 39): 10월, 오익창 등이 윤의중의 관직 회복을 청하는 상소를 올림. 윤광계는 평안도도사가 됨.
1610년 (광해군 2): 윤의중이 복관됨. 윤유심과 윤유기가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를 올림.
1612년 (광해군 4): 윤유심 사망.
1616년 (광해군 8): 윤선도가 이이첨을 탄핵하는 ‘병진소’를 올렸으나, 이로 인해 윤유기가 파출되고 윤선도는 경원으로 유배됨.
1619년 (광해군 11): 윤광계 및 윤유기 사망.
1623년 (인조 1): 인조반정으로 윤선도가 풀려나 의금부도사에 제수됨.
1628년 (인조 6): 윤선도가 별시문과 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여 대군들의 사부가 됨.
1631년 (인조 9): 윤선도가 양부 윤유기의 묘를 해남으로 이장함.
1633년 (인조 11): 윤선도가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함.
1634년 (인조 12): 윤선도가 성산현감으로 좌천됨.
1635년 (인조 13): 윤선도가 파직되어 양전의 문제를 논한 ‘을해소’를 올림.
1638년 (인조 16): 병자호란 이후 왕에게 문안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영덕에 귀양 감.
1644년 (인조 22): 윤선도가 ‘갑신소’를 올림.
1649년 (효종 즉위): 윤선도가 효종에게 ‘기축소’를 올림.
1652년 (효종 3): 윤선도가 동부승지 등에 제수되었으나, 원두표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림.
1658년 (효종 9): 정개청의 명예 회복을 주장하는 ‘국시소’를 올림.
1660년 (현종 1): 4월 17일, 자의대비 복제 문제를 논한 ‘논례소’를 올려 삼수로 유배됨.
1661년 (현종 2): 4월, 유배지에 있는 윤선도의 처우에 대해 조정에서 심리함.
1665년 (현종 6): 3월, 윤선도가 광양으로 이배됨.
1666년 (현종 7): 7월, 윤선도가 특명으로 유배에서 풀려남.
1667년 (현종 8): 8~9월경 윤선도가 해남으로 돌아와 부용동에 정착함.
1671년 (현종 12): 윤선도 사망. 허목이 신도비문을 지음.
1672년 (현종 13): 윤선도가 복관됨.
1673년 (현종 14): 영릉천개 사건이 일어남.
1674년 (숙종 즉위): 2월 인선대비 승하로 다시 복제 문제가 거론됨.
1675년 (숙종 1): 윤선도가 이조판서에 증직됨.
1678년 (숙종 4): 8월, 손자 윤이석이 상소하여 윤선도에게 시호가 내려졌으나, 이후 다시 삭탈됨.
1689년 (숙종 15): 2월 23일, 우의정 김덕원의 계로 윤선도의 관작과 시호가 최종 회복됨.
1690년 (숙종 16): 유생들의 상소로 윤선도를 기리는 서원을 건립하라는 명이 내려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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